한국의역사

Posted 10월 18th, 2013 by admin

고대

한국의 역사는 전기 구석기 시대부터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6] 현재까지 알려진 가장 오래된 토기는 기원전 8000년 무렵의 것이며,환단고기의 기록에 따르면 기원전 7197년에 세계 최초의 국가 환국이 세워졌다고 한다. 기원전 6000년 이전에 신석기 시대가 시작되었고, 기원전 1500년 무렵에 청동기 시대로 이어졌다. 삼국유사를 비롯한 다른 고려 중기의 기록에 따르면, 고조선 왕국이 기원전 2333년에 세워졌다[출처 필요]고 한다. 그 후, 고조선은 기원전 108년 한나라의 공격으로 멸망하여 여러 나라들로 나뉘었다.

기원전 1세기 무렵부터 삼국시대를 맞아 고구려, 백제, 신라가 원삼국시대의 여러 국가들을 정복하였고 한반도와 만주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였다. 이들 세 국가는 경제와 군사 면에서 서로 경쟁과 협력을 반복하였다. 고구려와 백제는 강력하였고, 특히 고구려는 대규모의 군사 행동을 하곤 하였다. 신라의 힘은 점진적으로 커져서 결국 676년에 한반도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한편 전직 고구려 장군인 대조영은 고구려의 뒤를 이어 만주와 연해주 일대에 발해를 건국하였다.
중세

신라가 9세기 후반에 국력이 쇠퇴하자, 후삼국시대가 시작되었고, 왕건이 건국한 고려가 후삼국을 통일하면서 종식되었다. 비슷한 시기, 926년 발해가 거란족에게 멸망한 이후 많은 발해 사람들이 고려로 넘어왔다.

고려 시대에는 고대보다 법률이 체계적으로 정리되고, 과거제가 소개되었으며, 불교가 번성하였다. 993-1019년 동안 고려는 거란과 전쟁을 벌여서 거란을 격퇴하였다. 1238년 몽골이 침입하였고 30년에 가까운 전쟁 끝에 양측은 평화 조약을 맺었다. 그 후 공민왕의 자주 개혁이 있기 전까지 원의 간섭을 받았는데, 이 시기 성리학이 한국에 전래되었다.
근세

이성계는 위화도 회군을 일으킨 이후 신진사대부와 손을 잡고 1392년 조선을 건국하였다. 세종이 왕위에 있던 시기, 한글이 창제되고 측우기, 앙부일구와 같은 과학기술의 발전도 이루어졌다. 그 후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났지만, 수군을 이끈 이순신 장군의 노력과 곳곳에서 일어난 의병을 비롯한 저항이 거세게 일어난 덕분에 결국 왜군을 물리칠 수 있었다. 1620년대와 1630년대에 걸쳐 조선은 청나라의 침입으로 어려움을 겪었다.
근대 태동기

붕당 정치가 변질되고 그 폐단이 심화되면서, 노론과 남인 위주의 일단 전제화 경향이 두드러졌다. 조선 후기 사회에서 서민은 점차 경제적 변화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고 생산력도 증가하였다. 이후 조선에서는 영조, 정조 시대에 다시 중흥하였다. 이때 실학이 융성하였고, 천주교가 일부 남인에 의해 학문의 일부로서 전래되었다. 그리고 양명학이 전래되었으며 천문학과 의학, 농업과 상업 분야에서의 기술적 성과가 산업 발전을 촉진하였다. 한편으로는 양반층이 증가하고 농민의 분화가 이루어지는 등 반상제의 신분제가 동요하였다. 세도 정치 시기에는 삼정의 문란으로 민란이 일어나기도 하였다. 홍경래의 난, 임술 농민 봉기 등은 조선의 신분제 사회가 갖고 있던 문제점과 지방 관리의 학정이 결합하여 일어난 것이다. 문화적으로는 새로운 경향이 나타났다. 판소리, 탈춤, 한글 소설, 서민 음악이 유행하였고, 생활 도예가 공예의 중심이 되었다.

19세기에 들어 조선에는 같은 외세의 접근이 빈번하게 일어났다. 이러한 위기 속에 흥선 대원군은 철저한 봉쇄 정책으로 일시적으로 접근을 막았으나, 이후 주위의 열강들과 무력 분쟁을 겪는 등 제국주의와 맞서게 되었다. 1870년대 초반에 일본은 조선에 무력으로 압력을 행사하면서 이미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던 청나라와 충돌하였고, 한국을 일본의 영향력 아래에 두려고 하였다. 1894년 일본은 청일전쟁을 일으켜 승리함으로써 조선과 요동반도에 대한 영향력을 강화하고자 하였으나 삼국간섭에 의해 잠시 물러섰다. 1895년 명성황후가 일본 자객들에게 암살되었다.[7] 1897년 조선은 대한제국 (1897-1910)으로 국호를 새롭게 정하였고, 고종은 황제의 자리에 올랐다. 그러나 일본의 부당한 요구와 간섭은 점차 거세지고 있었다. 한국의 곳곳에서는 의병들이 항일 무장 투쟁을 전개하였다.

일본은 러일전쟁(1904-1905)에서 승리하여 대한제국에 대한 영향력을 크게 증가시킬 수 있었다. 1905년 일본은 대한제국에게 압력을 행사하여 “을사조약”을 강제로 체결함으로써 대한제국을 보호국으로 만들었고 1910년에는 한일합방조약을 체결하였다. 그러나, 이 두 조약 모두 강압에 의한 것이며 법적으로는 무효라고 볼 수 있다.[8] 한국인은 일제강점기 동안 일본제국의 점령에 저항하고자 노력하였다. 1919년에는 곳곳에서 비폭력적인 3.1 운동이 일어났고, 뒤이어 이러한 독립운동을 총괄하고자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설립되어 만주와 중국과 시베리아에서 많은 활동을 하였다. 1920년대에는 서로군정서와 같은 독립군이 일본군과 직접적인 전쟁을 벌였고 봉오동 전투, 청산리 전투와 같은 성과를 거두기도 하였다.

1945년 8월 15일 제2차 세계대전에서 일본이 패망하자 한국은 해방을 맞았다. 해방부터 대한민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성립되는 시기까지를 군정기 또는 해방정국이라 한다. 해방정국에서 남과 북은 극심한 좌우 갈등을 겪었다. 북에서는 조만식과 같은 우익 인사에 대한 탄압이 있었고, 남에서는 여운형과 같은 중도 좌파 정치인이 암살되었다. 국제사회에서는 모스크바 3상회의를 통해 소련과 미국에서 통일 임시정부 수립을 위한 신탁통치를 계획했지만, 한국에서의 극심한 반대와 함께 미소공동위원회의 결렬로 폐기되었다. 1948년 대한민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정부가 별도로 수립되면서 일본군의 무장해제를 위한 군사분계선이었던 38선은 두 개의 국가로 분단되는 기준이 되었다. 분단 이후 양측 간의 긴장이 이어졌고 수시로 국지적인 교전이 있었다. 1950년 6월 25일 조선인민군이 일제히 38선을 넘어 대한민국을 침략하여 한국 전쟁이 발발하였다.

하롱베이 소개

Posted 9월 27th, 2013 by admin

1950년 프랑스의 아세트 출판사가 선정한 세계 8대 불가사의 중 하나인 하롱베이.
전설만이 유일하게 존재를 설명해주는 그곳에는 인간의 손길이 닿지 않는 광활한 자연이 있다.
노이공항을 빠져나오자 뜨거운 열기에 숨이 막힌다. 냉방이 잘된 버스에 서둘러 오른다.
차가 공항을 빠져나가자 거리를 가득 메운 오토바이 행렬이 눈에 들어온다.
버스는 베트남의 동쪽 끝으로 달린다. 나지막한 집, 벼가 촘촘한 논… .
베트남의 농촌 풍경이 차창 밖으로 지나간다.
날이 어둑해지면서 차장 밖은 이윽고 암흑 세계로 접어든다. 전기가 잘 보급되어 있지 않은 탓에 이곳에서
밤은 곧 어둠과 동의어다. 불빛 하나 새어나오지 않는 검정 속으로 버스는 헤드라이트를 켜고 달린다.
얼마나 달렸을까. 띄엄띄엄 보이던 불빛이 갑자기 늘어나면서 하롱베이가 가까워졌음을 느끼게 한다.
먼 바다 위로 수많은 검은 그림자가 빽빽이 들어선 모습만 어렴풋이 보였다.
이튿날 아침. 호텔에서 내려다본 하롱베이 앞바다는 높지 않은 산이 이어져 있는 듯하다.
그 아래로 호수처럼 찰랑이는 바다가 만들어내는 풍경은 수를 놓은 듯, 그림으로 그려낸 듯 신비롭다.
하롱베이에서 ‘하롱(下龍)’은 내려오다는 의미의 ‘하’, 용을 뜻하는 ‘롱’의 결합어다.
얼마나 아름다웠으면 하늘의 용이 지상까지 내려왔을까.

바이차이 선착장에서 배에 오른다. 멀리 나온 것 같지 않은데, 호텔 앞마당에서 하나로 보이던 산들이 따로
떨어진 기암괴석의 연속이라는 사실에 탄성이 절로 터진다.
단아한 자태로 곧게 서 있는 섬, 돛단배나 연꽃처럼 생긴 섬, 어떤 것은 사람의 얼굴이나 동물을 닮았다.
이름도 제각각이다. 두꺼비섬, 용섬, 도자기섬, 말안장섬…. 아직 1,000여 개의 섬에만 이름이 있다고 하는데,
그만큼 이곳의 모든 섬을 탐험하기란 쉽지 않다는 반증인 셈이다.
배는 첩첩산중 골짜기를 들어서고 빠져나가듯 섬 사이사이를 스치며 지난다.
석회암이 주를 이룬 섬은 바위가 툭툭 불거지고, 사람이 다가갈 수 없을 정도로 경사가 심한 곳들도 많다.
이런 이유로 인간의 훼손에서 벗어나 고유의 아름다움을 간직할 수 있었던 듯.
3,000여 개의 섬 가운데 현재 개발된 섬은 불과 100여 개.
절경을 보고 싶은 인간의 좁은 속내로는 아쉬울 따름이지만, 절경을 보존하기 위해서는 오히려 잘된 일이다.
수많은 섬들이 발을 담그고 있는 하롱베이의 청록빛 바다는 유난히 잔잔하다.
파도가 섬에 부딪혀 잔잔하게 부서지기 때문이다. 잔잔한 수면에 똑같은 모습으로 반사된 크고 작은 섬의 모습도
인상적이다. 배를 타고 하롱베이를 둘러보자면 얼마 지나지 않아 누구나 명경지수(明鏡止水)란 말을 떠올리게
된다. 수면을 경계로 위에 섬이 있고, 아래도 섬이 있으니 이곳에서 살펴볼 섬이 6,000개가 넘는 셈이다.
선착장을 출발한 배가 40여 분을 달려 도착한 곳은 동굴섬. 가파른 계단을 올라 어두운 입구를 통과하니 4,0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크고 웅장한 내부로 이어진다. 그곳에서 다시 좁은 길을 굽이굽이 돌아가면 형형색색의 신이 빚은
예술작품이 눈앞에 펼쳐진다. 억겁의 세월 동안 만들어진 기상천외한 모습에 탄성이 절로 나온다.
하롱베이의 절경이 좋아서 선녀들이 하늘에서 내려와 휴양하던 곳이라 한다.
관광객을 위해 설치해둔 인공 조명은 조금 거슬리지만 제멋대로 자란 듯한 종유석과 석순들이 위대한 자연을
실감나게 한다.

섬 몇백 개를 헤치고 나아갔을까. 큰 섬 여러 개가 병풍처럼 둘러싼바다에 수상촌이 보인다.
말 그대로 배에서 의식주를 해결하는 사람이 마을을 이룬 곳이다. 이곳의 어민들은 섬 대신 몇 개의 드럼통을
잇대어 놓고 그 위에 2~3칸 정도의 나무집을 짓고 산다. 섬을 버리고 배에서 사는 이유는 분명하다.
섬 해안이 모두 수직 절벽이어서다. 신이 이들에게 못 오를 땅 대신 잔잔한 바다를 준 것이다.
배가 수상촌에 도착하자 마을 사람들은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원 달러’를 외치며 호객행위에 온 힘을 쏟는다.
집주인에게 원 달러를 쥐어주고 집 안을 엿본다. 연탄불에 요리를 하고, 건전지로 TV를 본다. 개도 한두 마리씩
키운다. 배에서나 땅에서나 사는 방식은 같은 듯하다. 아침이면 큰 배가 학생들을 태우고 학교에 갔다가 오후에
집집마다 데려다 준단다.
호수와 같이 고요한 선상 학교에서 자연을 벗 삼아 수업을 하는 모습은 상상만으로도 인상 깊다.
배에 오른 지 두 시간쯤. 갑자기 배가 시동을 끈다. 세상천지가 고요해졌다. 사방을 둘러봐도 석회암으로 이뤄진
섬들뿐, 파도도 잠잠하다. 이곳에서 움직이는 것이라고는 우리 인간과 갈매기뿐이다.
바다마저 숨죽인 이곳에서는 오로지 섬들만이 숨을 쉰다. 섬과 섬 사이로 저 멀리 보이는 깊은 바다는 여전히
바위산들이 병풍처럼 장엄한 경관을 연출하고 있다.  베트남 전쟁 당시 미군도 감탄해서 차마 폭격하지 못했다고
한다. 용이 정말 존재한다면 바다 밑에 조용히 잠들어 있지 않을까? 상상의 나래가 펄럭인다.
고요한 바다에 작은 소란이 인다. 열대 과일 잔뜩 싣고 힘겹게 노를 젓던 노점상 할머니가 뱃전에 배를 붙인다.
어쩌다 흥정이 길어지거나 진행 방향이 같다 싶으면 갈고리를 큰 배에 걸고 ‘무임승차’를 한다.
섬과 바다를 삶의 터전으로 삼아 살아가는 이곳 사람의 지혜다.
동남아시아 특유의 소나기인 스콜이 한 차례 휘몰아치더니 이내 언제 그랬냐는 듯 햇볕이 내리쬔다.
수묵화처럼 흐릿한 안개에 가려졌던 섬들이 이내 햇빛에 푸른빛을 반사한다.
다채롭게 변하는 날씨에 따라 섬의 모습도 다양하게 변한다. 크루즈에 다시 시동이 걸린다.
섬들이 서서히 멀어지고 육지가 가까워지기 시작한다. 신기한 것은 육지가 가까워질수록 등뒤로 펼쳐진
하롱베이의 모습이 잘 떠오르지 않는다는 것이다.
한참 전에 본 풍경처럼 아련히 남아 있어 그리움도 가슴 깊이 남는다.

비빔밥

Posted 9월 17th, 2013 by admin

비빔밥은 대표적인 한국 요리의 하나로, 골동반이라고도 한다. 궁중에서는 비빔이라고 하였다. 전주 비빔밥이 가장 유명하며, 계절에 따라 재료를 변화 있게 하여 만든다. 비빔밥은 1800년대 말엽의 ≪시의전서 ≫에 비로소 등장한다. 문헌으로는 1800년대 말엽에 나타나지만 그 역사는 짧지 않은 것으로 추정된다. 예로부터 내려오는 산신제·동제 등은 집에서 먼 곳에서 지내므로 식기가 제대로 갖추어져 있지 않았다. 또 제물은 신인공식을 해야 한다는 생각을 지니고 있었기에 그릇 하나에 이것저것 받아 섞어서 먹었을 것이다. 조상에 올리는 제사의 경우도 제물을 빠짐없이 음복하기 위하여 밥에다 가지가지 제찬을 고루 섞어 비벼 먹었을 것이다. 따라서 비빔밥은 제삿밥에서 발달한 것으로 여겨진다. 지금도 제사를 지내는 집에서는 자시에 음복례를 지내고 젯메와 제상에 올린 적·숙채·간납 등을 넣고 밥을 비벼서 나누어 먹는 풍속이 있다.
일반적으로는 밥을 고슬고슬하게 지어서 보기좋은 대접에 담고 그 위에 미리 만들어 둔 여러 가지 나물·고기·달걀 등을 모양 있게 색을 맞추어 얹어 내면 먹을 때에 비벼서 먹는다. 나박김치와 장국을 곁들이면 좋다. 나물은 계절에 맞추어 고르는데 되도록 색채와 영양소의 배합이 좋도록 한다.

비빔밥 만드는 법

4인분기준 : 밥: 4공기, 쇠고기: 100g(채썬것,갈은것 반씩), 표고버섯: 3개, 도라지: 30g, 고사리: 30g, 콩나물: 30g, 계란: 2개, 대파: 1/2대, 다진마늘: 2큰술, 청포묵: 30g, 애호박: 1개, 참기름, 깨소금, 후추, 소금, 설탕 약간씩
- 쇠고기, 표고버섯, 고사리 양념: 진간장 1큰술, 다진파 1큰술, 다진마늘1/2큰술, 설탕 1작은술, 참기름 1작은술, 후추조금

1. 밥은 약간 물을 적게 넣어 고슬고슬하게 짓는다.
2. 호박은 길이로 1/2등분해서 두께 5mm로 반달 모양으로 썰어 소금에 절였다 짜서 다진파, 마늘, 깨소금에 살짝 볶는다.
3. 콩나물은 꼬리를 떼고 소금을 넣어 데쳐서 다진파, 다진마늘, 참기름, 깨소금을 넣어 무친다.
4. 고사리는 억센 부분을 다듬어내어 5cm 길이로 잘라서 양념장에 무쳐 볶아준다.
5. 도라지는 길이 5cm로 썰어주고 가늘게 찢어서 소금에 절였다 씻음다음 잘 짜서 다진파, 다진마늘, 참기름, 깨소금을 넣어 볶는다.
6. 청포묵은 채 썰어 소금, 참기름으로 무친다.
7. 계란은 황, 백 지단을 부쳐 길이 5cm, 두께 3mm로 채 썬다.
8. 표고버섯은 물에 불려서 기둥을 떼내고 채썰어 쇠고기 양념으로 무쳐 볶는다.
9. 다시마는 기름에 튀겨 잘게 부순다.
10. 채썬 쇠고기는 양념장에 무쳐 기름에 부드럽게 볶아준다.
11. 다진 쇠고기는 양념하여 볶다가 고추장 4큰술, 설탕 2큰술, 참기름, 다진파 1큰술, 멸치육수를 넣어 주걱으로 저어가며 볶아 고추장 볶음을 만들어 놓는다.
12. 그릇에 밥을 담고 그 위에 준비한 나물 등을 예쁘게 돌려 담고, 계란지단과 다시마 튀긴 것, 고추장 볶은 것을 위에 얹어낸다.

한국 부채

Posted 9월 12th, 2013 by admin

공예명가에서 소개해 드리는 오늘의 전통공예품은 한국전통부채 막선 민속부채입니다.

막선이란 말이 굉장히 생소하게 들릴수 것입니다. 막선이란 합죽선이라는 말과 동일하게

사용되고 있는 뜻입니다. 오늘은 막선 민속부채 종류 3가지를 선보일것이고 관심있게

잘 봐주셨으면 감사하겠습니다.

첫번째로 소개해 드리는 한국전통부채는 난이 그려져 있는 막선 난 민속부채 입니다.

난은 옛부터 여러곳에 활용되는 그림입니다. 부채 뿐만 아니라 다양한 공예품에 그려지고 있으며

국내에 계시는 장인께서 직접 손수 제작하신 부채라서 작품성이 뛰어난 민속부채로 유명합니다.

먼저 막선(합죽선)에 대해서 간단히 설명드리겠습니다. 합죽선이란 대나무를 얇게 깎아서 살을 만든다음

접이식 형태로 접었다 폈다 할수 있도록 만들어진 부채를 말합니다. 합죽선 외에도 오죽선, 태극선 같은

여러 종류의 민속부채가 현재 계속해서 장인들에게 만들어지고 있으며 유명한 장인이 만든 부채들은

가격이 매우 높게 책정되는 것들도 여러개가 존재하고 있습니다.

한국전통부채 중에서 가격이 몇십만원 혹은 몇백만원을 호가 한다면 믿을수 있으시겠어요?

그런 부채들이 현재 유명한 장인 선생님께서 만들고 있다고 합니다. 저희 공예명가도 그런 부채를 보유하고 있으나

보통 주문 제작으로만 이루어 지고 있습니다. 보통 유명장인께서 한개의 민속부채를 만드는데 만나절이 걸립니다.

그렇기 때문에 짧은 시간동안 여러개의 작품성 높은 한국전통부채를 만들어 내기는 솔직히 매우 어렵다고 봅니다.

유명 장인 선생께서 만드는 부채는 보통 1주에서 2주 전에 주문 제작을 해야지만 어느정도의 갯수가 만들어집니다.
두번째로 소개해 드리는 한국전통부채 대나무가 그려져 있는 막선 대나무 민속부채입니다.

옛부터 대나무는 여러가지를 의미했기 때문에 부채나 일반 그림에 많이 그려지게 되었습니다.

보통 대나무는 단결심 이나 의협심을 나타내는 의미로 쓰였고 또는 평안의 의미로도 사용했습니다.

그래서 전통적인 물건이나 그림에는 꼭 빠지지 않고 대나무가 새겨져 있거나 그려져 있는겁니다.

한국의 전통공예품은 하나의 공예품을 만들때 거기에 수 많은 의미를 부여하여 만들고 있습니다.

그것 때문인지 최근 외국인들에게 인기가 많고 선물용으로 전통공예품이 인기가 많은편입니다.^^

혹시 외국인에게 선물할때 대화가 가능하시다면 선물을 드릴때 아래와 같은 내용을 같이 설명해 드린다면

더 뜻깊은 선물이 될것이라 생각합니다. 먼저 합죽선 민속부채는 옛부터 계절의 변화에 적응하기 위해 생활도구를

활용하였습니다. 그중 여름 무더위를 조금이라도 식히기 위해서 부채를 사용했고 오늘날의 합죽선이 된것입니다.

옛 선조들도 기술이 점점 발달하여 부채의 생김새나 크기 등.. 여러 방면으로 만들게 되었습니다.

또한 부채가 처음 만들어 졌던 시기는 고려시대에 만들어 졌으며 오늘날 한국의 대표적인 민속부채가 된것입니다.

위와 같은 설명을 부수적으로 해드린다면 받는분들께서도 대단한 선물을 받게 된다는 생각에 매우 기뻐하실거에요.

또 한마디 더 붙이자면.. 합죽선은 주로 옛부터 양반이나 궁궐에서 많이 사용했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일반 천민이나 평민은 고급스러움과 비싼 가격으로 방구형(동그란) 부채를 많이 사용했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세번째로 소개해 드리는 한국전통부채는 매화꽃이 그려져 있는 막선 매화 민속부채입니다.

매화는 옛부터 풍성하고 아름다운 꽃으로 유명하여 그림이 자주 등장하는 꽃이였습니다.

매화는 옛부터 깊은 뜻이 존재했다고 해요. 매화의 꽃말은 미덕,고결,정절 이라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매화는 2~3월에 꽃이 피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매화는 꽃이 거의 피기 시작하게 되면 꽃향기를

멀리 퍼트리면서 봄이 왔다는 소식을 먼저 전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봄에 그림을 그릴때 보통 매화꽃이

자주 등장하는 이유중 하나였고, 매화꽃에는 신기하게도 열매가 생겼는데요. 그것이 바로 매실이에요.

꽃향기도 이루 말할수 없이 좋으며, 미덕,고결,정절 같은 좋은 의미가 있어서 여인들이 주로 좋아했습니다.

한국전통공예품의 그려진 그림이나 장식들은 모두 하나하나 소중하게 사용되는 의미가 있습니다.

이런 의미들이 있기 때문에 오래동안 전통으로 이어져 내려오면서 여러가지 종류의 공예품들이

꾸준히 만들어지고 있고, 상품성을 높게 평가 받고 있는겁니다. 몇년전부터는 외국인들에게 선물용으로

인기가 점점 높아지고 있으며, 국내분들에게 선물할때도 자주 찾는것을 종종 볼수 있었습니다.

특히 한국전통부채는 민속적인 의미가 많기 때문에 제가 추천하는 공예품중 하나이며 옛부터 민속부채는

나라에 귀빈이 방문했을때 사례품이나 하사품으로 선물로 사용되었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오늘은 민속부채 중에서도 막선 부채에 대해서 안내를 해드렸는데요. 만족하셨는지 모르겠네요.^^

공예명가에서는 더 다양한 공예품이 준비되어 있어서 부채 외에도 다양한 전통공예품을 볼수 있습니다.

한번 접속하셔서 우리나라의 소중한 문화유산인 전통공예품을 감상해 보시기 바랍니다.^^

일본소개

Posted 9월 6th, 2013 by admin
  •  하네츠키

오늘날은 여자아이들의 놀이가 되었지만 무로마치시대에는 조정, 조정에 출사하는 가정의 어른들의 내기놀이였다. 당시의 하네츠키놀이에서는 혼자서 하는 츠키하네와 패를 갈라서 승부를 겨루는 오이하네가 있어 내기를 수반한 것은 후자이다. 경기가 끝나면 성대한 연회가 열렸다고 한다. 하고이타에 인기배우의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것은 에도시대의 일로 화려한 장식이 붙게 되고 여자아이들의 정초놀이로 정착된 것이다.

  • 연날리기

일본에서는 헤이안시대의 소리개 연이 처음인데 정초놀이로 유행하기 시작한 것은 에도시대에 들어와서의 일이라고 한다. 또 옛날에는 연의 형태가 오징어와 비슷해서 교토에서는 연을 이카(오징어)라고 부르기도 했는데, 에도시대에 동일본으로 전해지면서 타코(문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현재는 여러 가지로 고안을 한 연들이 있어 정초놀이로 그치지 않고 바람이 부는 계절을 골라 연중 연날리기를 하고 있다. 나가사키의 싸움연, 니가타, 카나가와의 큰 연날리기의 등이 유명하다.

  • 팽이돌리기


팽이돌리기의 기원은 헤이안시대 이전 중국으로부터 전해져 왔다고 한다. 팽이에는 방에서 노는 방팽이, 사움팽이 등 여러 가지 형태와 놀이방법이 있으며 에도시대에는 너무 유행하여 몇 번씩이나 금지령이 내렸다고 한다. 당초에는 아이들의 놀이도구였던 것이 하카다 팽이를 사용한 곡예팽이 배우의 출현으로 크게 유행한 것 같다. 잘 알려진 요요도 팽이의 일종으로 이탈리아로부터 전해졌다고 한다.

  • 가루타


가족키리 즐기는 카드놀이로 어원은 포르쿠갈어의 가르다에서 온 것이다. 일본에서는 헤이안시대에 대합조개의 껍질을 맞춰서 하는 「가이아와세」놀이가 차차 변화하여 「우타카이라든가 「우타가루타,이로하가루카등이 되어 에도시대 중엽부터 정초놀이가 되었다. 가장 오래된 것으로 오구라햐쿠닌잇슈를 들 수 있는데 13세기에 7세기 이후의 대표적인 와카1백수를 모아 놓은 것이다. 와카는 5·7·5의 와 7·7의 로 되어 있다.
놀이방법은 우선 하구만 쓰여진 카드 지후다를 늘어놓는다. 한 사람이 상구 에후다를 읽어가면 그것에 이어지는 하구를 먼저 찾아내는 것이다. 많이 찾은 사람이 승자가 된다. 이러한 와카를 기억함으로써 문화, 전통을 계승하려는 옛 사람들의 지혜를 엿볼 수 있다. 가정에서뿐만 아니라 학교에서도 반 대항이 열리며 지역, 직장에서의 경기대회도 있어 어른, 아이 모두 참가한다. 또한 전국 가루타대회도 열려 그 해의 가루타 명인이 결정된다.

● 스고로쿠
스고루쿠는 그림이 그려져 있는 판 위에서 출발점부터 시작하여 말을 진행시켜 가는데 먼저 나는 사람이 이기는 우리나라의 윷놀이와 유사한 놀이이다. 말을 진행시키는 데는 주사위를 사용하며 주사위에 나온 수만큼 말을 이동시킨다

  • 본오도리

추석을 맞이하여 과연 일본에서도 그와 비슷한 세시가 있는지 궁금한 사람이 있으리라 생각한다. 일본에서도 정월과 함께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본이라는 세시가 있는데 각 집에서 조상의 영혼을 맞이하여 공물을 바쳐서 공양하는 세시이다. 불교적인 관점에서 볼 때 한국의 백중날과 관련이 있으나 일본에서는 불교 신자뿐만 아니라 민속적인 행사로써 민간에 정착하고 있다. 그 날짜는 원래 백중날처럼 음력 7월 15일에 행해졌으나 현재는 양력을 채용함에 따라 편의상 한달 후에 실시하게 되었고 일반적으로 양력 8월 13일에서 8월 16일에 걸쳐서 행해지고 있다.  본은 겉으로는 불교식 행사이지만 내용을 보았을 때 농경의례와 사자의례가 결합되고 있다는 점에서 추석과 유사하다. 또한 `민족이동’이라는 말로 표현되는 추석처럼 본 때도 사람들이 한꺼번에 귀향한다는 점에서도 유사한 점이 많다. 김택규교수에 의하면 삼국시대 이전에 형성된 한국의 토착적 농경문화의 영역을 ①단오권(단오를 중시하는 지역이며 잡곡재배를 중심으로 하는 북방문화의 남하 정착하는 과정에서 형성되는 영역), ②추석권(추석을 중시하는 지역으로서 도작재배문화의 도래, 정착 및 그 북상 과정에서 형성된 영역), ③추석, 단오 복합권(양자의 복합한 영역)으로 분류하였다. 추석권의 구체적인 위치는 “소백산맥과 남한강 유역을 따라서 동에서 서로 선을 그어 보면 남서부”이기 때문에 삼한인의 거주지와 거의 일치한다. 따라서 추석은 도작재배문화를 가진 삼한인의 중요한 세시였다고 추정된다. 필자는 일본에서 불린 야요이인은 한반도에서 이주한 삼한인과 그 후손이라는 가설을 가지고 있는데 그들이 일본에 이주할 때 수반된 핵심적인 세시가 추석이 아닌가 생각한다.

  • 타나바타

본래는 음력 7월 7일에 행해지는데 지방에 따라서는 한 달 늦은 8월 7일인 곳도 있다. 타나바타는 견우와 직녀가 일 년에 한 번 만나는 것을 허락하는 날이라는 전설이 퍼졌으며 헤이안 시대에는 상류층 자녀들이 기치코덴이라는 별축제를 하였다. 옛날 타나바타는 7월 15일의 오본행사를 준비하는 날이었다. 일반서민들 사이에서 행해지는 행사를 보면 액땜의 의미가 강하다. 여자아이는 이 날 아침 머리를 감고, 각 가정에서는 신에게 바치는 식기류를 씻고, 벼루를 깨끗이 하고 불구를 닦으며 오본에 대비하여 여러 가지 준비를 하였다. 준비하는 것 가운데는 신을 위한 제의 만들기가 있고, 선발된 미코가 물가에 만들어진 단상에서 베를 짰다. 이러한 일본의 고래신앙과 중국에서 전래된 견우와 직녀의 전설이 합쳐서 오늘날의 풍습에 이르고 있다.
● 타나바타다케

칠석날 밤에는 견우와 직녀가 해후를 하고 다음 날에는 다시 하늘나라로 돌아간다. 그때 두 별에게 더러움, 부정을 함께 가지고 가게끔 대나무를 세우는 풍습이 생겼다.

● 오색 단자쿠

오색 단자쿠에다 노래나 뜻 있는 문구를 써서 색지장식과 함께 대나무에 매달고 다음 날에는 대나무채로 강이나 바다로 떠내려보내는 풍습이다. 중국에서는 직녀성을 기려 여성이 바느질에 능하도록 기원하는 풍습이 있었다는 데서 비롯, 일본에서는 오색 단자쿠에 소망을 쓰고 색종이, 종이학 등과 함께 정원에 장식한 대나무에 매달아 서도와 수예 등이 능숙해지도록 기원하였다. 미야기현의 센다이시와 카나가와현의 히라츠카시의 타나바타는 그 화려함이 전국적으로 유명하다.

한국 풍습솨예절

Posted 8월 28th, 2013 by admin


옛날부터한국은 예절의나라 로불리어오고있다.한국에는 웃어른에 대한 예절,아랫사람에 대한 예절,가정에서의 예절,이웃 간의 예절, 혼상제례에대한예절등많은예절이있다. 웃어른이라하면집안어른, 동네어른, 모교의은사, 직자의상, 국가의지도자등을말하는데우리나라에서는예날부터웃어른에대한예절이매우엄격하였. 한집에서살더라도아침저녁으로어른께문안을드렸으며멀리계신친척어른들께도자주문안을드렸다. 대가족재도속에서는무엇이든지어른들중심으로생각하고어른들을위해서해야만했다. 가장좋은자리를내어드리고제일맛있는음식을대접 하고또옷도가장값진옷감으로지어드렸다. 그리고무슨일이든지웃어른께사의 하여결정하고웃어른의말씀에는절대순종하였다. 어른들앞에서는큰소리로이야기도하지않았고화도내면안되었. 할아버지, 할머 니앞에서아이들이잘못해도아버지, 어머니가꾸짖지못했다. 그래서할아버지, 할머니밑에서자란아이들이버릇이없다는말도있다. 그리고큰소리로웃는다거나입 을크게벌리고웃지도않았다. 그래서지금도손을입에대고웃는여성들을많이볼 수있다. 담배를피우다가어른을대하면담배를꺼버려애하고어른앞에서는다리를뻗고앉거난꼬고앉거나눕지도않았다. 또인사를 할때손을주머니에놓고한다거 나어른이물건을주실때한손으로받는다거나어른앞을막지나간다거나하는것 도예의에어긋나는것이다. 음식을 먹을 때에는 보통 어른들은 어른들끼리, 아이들은 아이들끼리, 여자는 여자들 끼리앉아서먹는다. 그러나나이많으신분들과나이적은사람들이한자리에같이 앉게되는경우도있다. 이런경우에는나이많은분들이먼저상좌에앉은다음나이 적은사람들이앉는다. 어른들이수저를들기전에먼저먹는것은버릇이없는사람이다. 그리고소리를내면서먹으면안되고맛있는반찬은어른들에게양보를한다. 그리고음식을다먹었어도어른들이수저를놓을때까지자리에서움직이지않는것이예의이다. 한국에서는백일, 돌, 생일, 결혼식, 환갑, 진갑같은날에늘많은손님들을초대한다. 잔치집에갈때에는축하하는뜻으로적당한선물을가지고가는것이예의이다. 어른의생일이나환갑, 진갑같은특별한날에는술이나고기또는그분이좋아하실적 당한물건을가지고가는것이좋다. 때에따라서는돈도괜찮다. 백일날이나돌날같 은때에는장난감이나놋같은것이좋다. 그리고특별한날이아니고그냥방문할때나초대를받았을때는꽃이나과, 과자 정도가좋다. 병원에입원한환자를방문할때대개꽃을많이가지고가는데한국에서는노란꽃 을가져가지않는다. 사람이죽으면상복을누런베로만들고장례식때는회고노란꽃만사용하기때문에병원에갈때에는노란꽃을가져가지핞는다고한다. 상가에갈때에는보통화환이나조의금을가져가는데조의금은횐봉투에넣어부의 또는근조라고써가지고간다. 옷은희거나검은옷이좋고눈에잘뜨이지않는색도괜찮다. 그런데근래에화서는와서는외국의예절과풍습이많이들어와서한국예절에많은 혼란을가져왔고옛풍습들이차춤사라져가고있다.

김밥을 만드는 방법

Posted 8월 15th, 2013 by admin

김밥 재료 준비 됬습니다.

참기름은 역간버무린밥입니다.

김밥 만드는 방법 중 첫번째 과정이죠.

김밥재료입니다.

오이, 계란, 햄입니다.

이제 김밥을 만들겠습니다.

김에밥을 만드는방법의가장 첫 단계이 죠.

다음 깨잎을 깔고 그위에 햄을 올립니다.

다음 게란을 올립니다.

다음 오이를 올립니다.

시원한 맛을 위해 김밥 재료에 시금치대신 오이를 넣습니다.

맛쌍을 올려 놓습니다.

집에 남는 크래미가 있어 이것으로 대였습니다.

다음 우엉과 단무지

볶음 김치도 넣엇습니다. 이정도면 감법 재료가 꽤 많이 들어가는 것같습니다.

돌돌 답니다.

김밥 만드는 방법 중 가장 솔롤님이 가장 필요한과정입니다.

완성

안차우 (물담배)

Posted 8월 12th, 2013 by admin
구장잎/빈랑열매 씹기와 투옥라오 물담배) 피기 풍습전설에 의하면 구장잎/빈랑열매 씹는 행위는 훙 브엉시대로부터 관습으로 전해져 내려왔고 구장잎과 빈랑나무에 얽힌 고대 전설과 관련이 있다고 한다.
쩌우라고도 불려지는 구장잎 씹기는, 빈랑열매 이파리의 단 맛, 껍질의 매운 맛, 짜이뿌리의 쓴 맛, 촉촉한 라임의 톡 쏘는 맛의 4가지 맛을 느낄 수 있다.
구장잎/빈랑열매 씹기는 베트남의 독특한 풍습이다. 고대의학서적은 “구장잎과 빈랑열매를 씹으면 입에서 향기가 나고, 나쁜 성질을 완화시키며, 음식의 소화를 돕는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구장잎/빈랑열매를 씹음으로서 사람 사이의 관계가 가까워질 수 있고, 서로에게 친근감을 느끼게 된다. 모든 결혼식장에서는 사람들이 함께 특별한 날을 즐길 수 있도록 구장잎/빈랑열매 한 접시가 준비된다.

축 제나 뗏 명절에는 사람들을 초대하여 친분을 쌓기 위해 구장잎/빈랑열매를 준비한다. 사람들은 구장잎/빈랑열매를 함께 씹으면서, 오래된 친구들은 우정에 대한 감사를 표현하는가 하면, 추운 겨울날에는 따뜻함을 느끼고, 장례식장에서는 슬픔을 완화시킨다. 베트남인들은 조상에게 제사를 지낼 때 구장잎/빈랑열매를 제단에 올리기도 한다.

오늘날 베트남의 촌락이나 노인들 사이에서는 구장잎/빈랑열매 씹기 풍습이 여전히 행해지고 있다.

베트남인들에게는 투옥라오와 같은 독한 담배도 빼놓을 수 없다. 여성들 사이에서는 주로 구장잎 씹기가 친밀한 대화의 구심점이 되어주는 반면에, 남성에게는 투옥라오로 인생의 즐거움, 슬픔을 나눈다.

농부들은 논을 쟁기질 하는 동안에도 담배를 피기 위해 항상 물담뱃대(디에우까이)를 들고 다닌다.

농부들은 논을 쟁기질 하는 동안에도 담배를 피기 위해 항상 디에우 캐이 파이프를 들고 다닌다.

베트남 결혼식

Posted 8월 5th, 2013 by admin

베트남 사회에서 결혼은 중대한 의례이다. 전통 결혼식의 절차는 매우 복잡하지만, 현대에는 많이 간소화 되어 ‘배우자 선택, 청혼, 결혼승낙, 결혼식’의 절차를 주로 따른다.

결혼 절차는 소수민족들마다 그들의 관습에 따라 다르지만, 일반적으로 다음 두 차례의 의식을 거친다.

 

레 안 호이(약혼식)

결혼 전에 신랑과 그의 가족들은 신부의 집을 방문하는데, 약혼선물로 빈랑열매와 구장잎, 차, 케이크, 과일, 와인 등의 별미를 둥근 광택의 박스 안에 넣어 붉은 천으로 덮어서 미혼의 젊은 남자 또는 여자가 운반하게 한다. 이 날 양가 가족들은 의논하여 결혼식을 올리기에 좋은 날짜를 정한다.

 

레끄어이(결혼식)

 

결혼식에 초대된 하객들은 신랑신부의 행복을 축하한다. 신랑신부는 우선 제단에서 조상에게 결혼승낙을 구한 후에 양가 부모에게 키워주고 보살펴주심에 대한 감사를 표현한다. 결혼식이 끝나면 손님들은 파티를 즐기며 기쁨을 함께 나눈다.

요리 전통

Posted 7월 27th, 2013 by admin

이 부분의 본문은 한국 요리,한국 전통 차입니다.

한국 요리 는 한국의 전통 음식을 뜻한다. 복잡한 궁중요리에서부터 지방의 특색 요리와 현대의 퓨전 요리에 이르기까지 재료와 조리법이 매우 다양하다. 전통적인 한국 정식은 밥,국, 김치와 함께 나오는 많은 반찬들로 이루어진다. 한국 음식은 보통 참기름,된장, 간장, 소금, 마늘, 생강, 그리고 고추장 등으로 맛을 낸다. 식단은 계절별로 다양한데, 전통적으로 겨울 동안에는 장독에 저장된 김치와 그 밖에 절인 채소들에 많이 의존했다.

한국은 기후와 풍토가 농사에 적합하여 일찍이 신석기시대 후에 잡곡 농사로 농업이 시작되었고, 그 후 벼농사가 전파되었다. 이후 곡물은 한국 음식문화의 중심이 되었고, 삼국시대 후기부터 밥과 반찬으로 주식, 부식을 분리한 한국 고유의 일상식 형태가 형성되었다.밥, 죽, 떡, 국수, 만두, 수제비, 술 등의 곡물 음식이 발달하였고 콩으로 메주를 쑤어 장을 담그는 발효 음식도 발달하였다. 재배 채소뿐 아니라, 산야에 자생하는 산나물, 들나물 등 채소의 종류가 다양하여 상채, 쌈, 나물,김치로 만들어 식탁을 계절에 따라 변화있게 차릴 수 있었다. 예로부터 약식동원, 약과 음식은 그 근본이 같다)의 식관념 속에 역으로 쓰이는 재료가 음식의 조리에 많이 이용되고 있다.

한국인의 일상식은 밥을 주식으로 하고, 여러 가지 반찬을 곁들여 먹는 식사 형태이다. 주식은 쌀만으로 지은 쌀밥과 조, 보리, 콩, 팥 등의 잡곡을 섞어 지은 잡곡밥을 기본으로 한다. 부식은 국이나 찌개, 김치와 장류를 기본으로 하고, 육류, 어패류, 채소류, 해조류 등을 이용해서 반찬을 만들었다. 이렇게 밥과 반찬을 같이 먹는 식사 형태는 여러 가지 식품을 골고루 섭취함으로써 영양의 균형을 상호 보완시켜주는 합리적인 식사 형식이다.

주식으로는 밥, 죽, 국수, 만두, 떡국, 수제비 등이 있고, 부식으로는 국, 찌개, 구이, 전, 조림, 볶음, 편육, 나물, 생채, 젓갈, 포, 장아찌, 찜, 전골, 김치 등 가지수가 많다. 이러한 일상 음식 외에 떡, 한과, 엿, 화채, 차, 술 등의 음식도 다양하다. 또 저장 발효 식품인 장류, 젓갈, 김치 등이 다양하게 발달하였다.